백제는 고대 한반도 서남부에 있었던 군주제 국가로 고구려, 신라와 함께 삼국시대를 구성하였습니다. 백제의 문화는 대체로 세련되고 섬세한 것이 특징으로 백제의 문화는 왜 등지에 많은 영향을 미친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백제는 3세기 경 충청도, 전라도 일부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갔는데요. 시조는 부여, 고구려에서 피난한 온조왕으로 전해지며, 마한 54개 연맹체 중 하나인 십제국으로 시작해 6세기경 마한을 병합했습니다. 고구려에서 도주한 온조 집단이 처음에 정착한 곳은 미추홀과 위례성이었고, 비류가 자살하면서 위례로 합쳐졌습니다. 고조선 멸망 후부터 파상적으로 피난해 온 집단들은 목지국 지배권 내의 여러 세력을 점차 해체해 갔습니다.
백제는 이렇게 시작부터 사생결단으로 전쟁하거나 주변 세력을 회유하면서 병합하는 방법으로 성장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리하여 다루왕, 초고왕의 재위 기간을 거치는 동안 토착 부족 세력을 결합하면서 점차 마한의 여러 부족과 마찰을 일으켰습니다. 낙랑, 대방의 침략을 받은 한강 유역의 부족 국가들은 이에 대항하기 위해 보다 큰 연맹체가 요구되자 백제를 맹주로 공고히 단결함으로써 백제는 부족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백제는 3세기 말까지 경기도 지역을 석권했으며 13대 근초고왕 때인 4세기 중반에 걸쳐 북쪽으로는 황해도 일부 지역과 남쪽으로는 금강 유역까지, 5세기 후반 들어서는 전북 지역까지 직접 통치를 시행했습니다.
특히 백제의 전성기라고 불리며 강성해진 국력이 대외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근초고왕 때인데요. 마한 대부분을 병합하여 전라도 지역 대부분을 영토로 하였으며 이 시대의 백제는 동진에 사절을 보냈기도 하며 왜국과도 국교를 맺어 칠지도와 칠자경을 보내는 등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고 합니다. 백제는 이로써 국제적인 국가로 성장하기 시작하는데요. 369년, 고구려 고국원왕이 백제의 치양을 공격하면서 백제와 고구려의 다툼이 시작되었고, 2년 후 근초고왕이 고구려의 평양성까지 진격하여 황해도까지 영토를 넓혔습니다. 이 과정에서 고구려는 고국원왕이 전사하는 치욕을 겪었으며, 이후 고구려는 백제를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기게 되었죠.
하지만 근초고왕 말년부터 국력 쇠퇴가 시작되었는데요. 근초고왕의 사후 이어지는 근구수왕, 진사왕, 아신왕대를 거치면서 국세가 현격히 약화됩니다. 373년, 신라의 국력이 점점 강해져 독산성 성주가 주민들과 함께 신라에 투항했을 때 대응하지 못했고, 375년 고구려 소수림왕의 침공으로 수곡성을 빼앗기는 등 수난을 맞게 되죠.
그리고 그 뒤를 이은 근구수왕 시기에도 고구려와의 대립은 이어져서 왕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백제 역사상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평양성을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진사왕 원년에 청목령에 방어성을 축조하고 관미령에서 전투하는 등 백제의 방어선은 이미 예성강 선으로 후퇴해 있었고, 예성강 방어선도 진사왕 말년에 광개토대왕에 의해 갈려버립니다. 이렇게 백제는 외부로부터 고구려의 압박뿐만 아니라 내부의 끊임없는 정쟁과 권력 암투로 혼란한 시기를 보내게 됩니다.
백제의 혼란한 시기를 지나 백제의 중흥기는 동성왕(재위 479년 ~ 501년), 무령왕(재위 501년 ~ 523년)과 성왕(재위 523년 ~ 554년)으로 이어지는 5세기 말 ~ 6세기 중반기 시기로 볼 수 있는데요.
5세기 후반 동성왕 때부터는 권력 투쟁을 벌이며 다시 사회가 안정되면서 실추된 왕권을 회복하기 시작합니다. 동성왕은 혼인을 통해 신라와의 동맹을 강화하여 고구려에 투쟁하였고, 무령왕은 양직공도에 의하면 지방의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함으로써 지방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합니다. 이로써 백제는 내분을 정리할 수 있었죠. 정권이 안정된 후 동성왕은 고구려에게 빼앗긴 영토의 일부를 다시 수복하고 남쪽으로는 침미다례 세력에게 무력시위하여 군기를 잡고, 침미다례 일대를 백제가 필요로 할 때 언제든 인력과 자원을 동원할 수 있도록 직접 지배 세력으로 개편하는 작업을 시작합니다. 또 신라 소지왕과 혼인을 통해 나제동맹을 강화하는 한편, 중국 남조와 국교를 재개하게 됩니다.
성왕은 마한 전체를 제압하는데 성공하여 부여 지역의 사비성으로 수도를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로 개칭하면서 왕권 강화와 수도의 방어력 강화를 꾀하였습니다. 중앙 관청과 지방 제도를 정비하고 승려를 등용하여 불교를 진흥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성왕은 고구려의 내정이 불안한 틈을 타서 신라 진흥왕과 연합하여 일시적으로 한강 유역을 되찾게 됩니다. 하지만 처음에 한강 상류를 차지하기로 약속한 신라와 다툼이 발생하면서 진흥왕에게 빼앗기고 말았으며, 한강 유역 수복을 위해 나제동맹을 깨고 벌인 관산성 전투에서 사망하고 맙니다.
성왕 사후 이후 백제는 위기를 맞게 되지만 7세기 초반의 무왕 대에 이르러 왕권 회복을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대외적으로는 신라와의 전쟁에 총력을 기울이며 10여 차례에 걸친 전쟁을 치렀고, 대부분 승리하여 빼앗겼던 남원, 임실, 장수를 거의 30년 만에 탈환해냅니다. 한편 동아시아의 양대 세력인 고구려와 수나라가 각축전을 벌일 때, 어느 한쪽에 가담하기보다는 양쪽의 대결을 이용한 기회주의를 펼칩니다.
이후 무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의자왕은 백제 역사에서 손에 꼽을 만한 호전적인 군주입니다. 신라의 전략 요충지를 함락시키는 것을 비롯해 여러 성을 함락하는 전과를 올리고, 고구려와 신라가 싸우는 와중에 신라의 배후를 공격하여 재미를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의자왕은 선대 무왕 시절부터 우호 관계를 유지해 왔던 당나라에 대한 의리를 깨버렸고, 그 결과 당태종의 분노를 사서 당과 외교 관계가 완전히 끊기고 맙니다. 당태종은 백제 대신 신라와의 동맹을 강화하여 648년 나당동맹이 체결되는데요. 660년,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 공격을 받게 되고 수도 사비성이 함락되며 백제는 멸망하게 됩니다.
백제(百濟)
기원전 18년 ~ 서기 660년 8월 29일 (678년)
기원전 18년 온조왕 건국
기원전 6년 하남위례성 천도
260년 관등 제정
371년 평양성 전투
384년 불교 전래
475년 위례성 함락, 웅진성 천도
538년 사비성 천도
554년 관산성 전투
642년 대야성 전투
660년 의자왕 항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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