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얕고넓은 이야기

고대 이집트 문명의 역사

by 유한시 2022. 7. 8.

 

케메트 또는 고대 이집트는 이집트 나일강 하류와 수에즈 운하 일대에서 번성한 문명 및 국가의 총칭입니다. 이집트의 고대 문명 시기로 기원전 3,100년 경 히에라콘폴리스 통치자들은 상이집트를 장악하고 나일강 북부의 하이집트를 정복했습니다. 마지막 정복자였던 나르메르 왕은 자신의 정복을 기념하기 위해 팔래트를 제작하였고, 그의 후계자 메네스는 멤피스에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고 이집트 최초의 왕조를 세웠습니다.

이후 3,000년간 고대 이집트는 독자적인 문명을 이루었으며 수많은 왕조가 세워지고 사라졌습니다. 고대 이집트 문명은 대중 매체나 교과서에서도 많이 노출되었기 때문에 한 번쯤은 보셨을 것 같은데요. 고대 이집트 문명은 잘 알고 계신 독특한 상형문자와 제3왕조 시기의 거대한 피라미드 및 스핑크스를 건설했습니다. 이집트의 왕조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도시별로 분열되어 약화되기도 하였으나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헬레니즘 문화로 편입될 때까지 나일강 유역을 비롯하여 시리아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력을 행사하였습니다.


이집트는 원조 수로 제국으로서 관개 산업에 의존하였던 문명으로 이집트에서 발달한 데에는 나일강의 특성이 크게 기인했습니다. 이 강은 석기 시대와 나카다 문화 시대로부터 근근이 이어져 온 이집트 문화의 동맥으로, 헤로도토스는 이집트를 '나일강의 선물'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고대 이집트 문명이 발원한 나일강 유역은 예로부터 축복받은 지역이라고 불릴 정도로 토질이 비옥했는데요. 매년 주기적인 범람이 일어나 상류의 진흙과 양분들을 쓸고 내려왔고, 생산량이 극도로 높은 거대한 충적 평야를 형성했기에 이집트에서는 이미 약 100만 년 전부터 구석기가 시작되었을 정도로 인류가 일찍 거주했습니다. 나일강의 존재로 인해 고대 이집트는 비료나 농법이 발달하기 전, 농경 사회를 이어 나가기에 최상의 환경이었죠. 이집트는 구석기와 중석기, 그리고 신석기를 거쳐 점차 거대한 도시들과 성읍들이 형성되었고, 본격적인 정착과 함께 농경문화가 이루어지면서 빠르게 발전했습니다.


본격적인 통일 왕조가 들어서기 전 고대 이집트는 크게 남쪽 나일강 상류 쪽의 상이집트, 그리고 북쪽 나일강 하류의 삼각주 쪽의 하이집트로 나누어진 상황이었는데요. 인류의 정착부터 상이집트와 하이집트 시대까지를 이집트의 '제0왕조', 즉 이집트 선왕조라고 부릅니다. 문명의 발전도나 문화는 인류가 더 일찍 개척한 상이집트가 훨씬 더 뛰어난 상황이었고, 상이집트 출신의 나르메르가 기원전 3150년경 하이집트를 정복하고 고대 이집트를 통치하는 파라오로 즉위하면서 이집트 초기 왕조가 시작됩니다.

초대 파라오 나르메르를 비롯하여 덴, 카아, 세네지 등 그의 뒤를 이은 군주들은 상하 이집트를 하나로 통합하는 데에 힘썼습니다. 또한 이 시기에 이집트의 전통적 종교관, 세계관, 사회관의 기반이 형성되면서 이후 몇천년 간 지속될 이집트 문화의 토대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후 파라오 조세르가 등장하여 이집트 고왕국 시대가 열리는데요. 고왕국 시대는 이집트의 피라미드 건축의 황금기로 불리는데,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유일하게 현재까지 남아있는 대피라미드가 바로 고왕국 시대의 쿠푸 왕 때 지어졌습니다. 또한 쿠푸의 뒤를 이은 카프레, 멘카우레 등 명군들이 그 옆에 2개의 피라미드를 더 세우면서 현재 우리가 기자에서 볼 수 있는 거대한 피라미드 3기를 완성했고, 이와 같은 크기의 피라미드는 그전에도, 그 이후에도 더 이상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고왕국은 붕괴 후엔 혼란기인 제1중간기가 도래합니다. 이 시기엔 수많은 파라오가 즉위와 암살을 반복하여 70일간 파라오 70명이 설칠 정도로 짧은 기간 재위하다 사라질 정도로 상당히 혼란스러웠습니다. 결국 제11왕조 출신의 멘투호테프 2세가 마침내 기원전 2055년경 하이집트의 제10왕조를 무릎 꿇리고 130여 년 만에 이집트를 재통일하면서 제1중간기가 끝납니다.

멘투호테프 2세 이후의 통일 이집트를 이집트 중왕국이라고 부르는데요. 멘투호테프 2세의 노력으로 지나치게 강화된 지방 귀족들의 힘을 약화하기 위해 다양한 술수를 썼고, 그를 이은 중왕국의 파라오들은 훨씬 안정된 왕권을 잡고 평화로운 통치를 할 수 있었습니다. 세누스레트 3세의 후계자 아메넴헤트 3세는 내치에 신경을 써서 파이윰에 신전을 짓거나 운하를 파는 등 거대한 건축물들을 건립하고 중왕국의 문화 예술을 크게 후원하며 이집트 중왕국의 최전성기를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아메넴헤트 3세 사후 왕권 약화와 함께 기원전 1650년경 힉소스인들의 침략으로 왕국이 무너지면서 두 번째 혼란기인 제2중간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힉소스인들은 하이집트의 나일 삼각주 일대를 장악한 후 파라오를 칭했습니다. 이집트 원주민들은 남쪽으로 밀려나 상이집트를 중심으로 왕조를 세웠으나 힉소스인들의 대대적인 공격으로 수도 테베가 함락되며 그대로 멸망했고, 그 잔해 위에 또 다른 이집트계 왕조가 세워졌습니다. 새로운 왕조는 천천히 힘을 기르며 이집트를 통일할 기회를 노렸고, 점차 국력이 커지면서 세케넨레 타오의 지휘 하에 힉소스인들에게 전쟁을 선포합니다. 이후 몇십여년에 걸친 수복 전쟁 끝에 아흐모세 1세가 마침내 기원전 1550년경 힉소스인들을 몰아내고 제18왕조를 개창, 이집트를 재통일하면서 이집트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인 이집트 신왕국이 시작됩니다.

 


이집트 신왕국은 이집트 제국이라고 불리기도 할 정도로 이집트의 영광이나 부유함이 정점을 찍었던 시대인데요. 유명한 파라오들 대다수가 바로 이 신왕국 시대의 파라오입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여성 파라오 하트셉수트, 전쟁왕 투트모세 3세, 최초의 유일 신앙을 내세운 아케나텐, 소년왕 투탕카멘, 이집트 최고의 군주 람세스 2세 등이 모두 이 신왕국의 군주들이죠. 신왕국은 하트셉수트와 투트모세 3세의 시절에 크게 영토와 영향력을 넓히며 인근을 아우르는 대제국으로 성장했고, 투트모세 3세의 후계자 아멘호테프 3세 역시 전쟁에서 승리하거나 신전들을 건립하며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여러 파라오를 거쳐 람세스 2세는 중동의 패권국 히타이트와 카데시 전투를 벌여 오리엔트의 패권을 다투며 이집트의 최대 강역을 이룩했습니다. 아부심벨이나 라메세움 등 수많은 건축물들을 건설해 이집트의 황금기를 오랫동안 통치했지만 람세스 2세가 죽자 신왕국은 서서히 쇠락했고, 결국 기원전 1077년에 멸망했습니다.

신왕국이 무너지고 찾아온 세 번째 중간기인 제3중간기에 이집트는 역대급 혼란에 빠지게 되는데요. 제21왕조부터 제24왕조까지 연달아 등장하며 서로 패권을 다투었고, 이집트는 셀 수 없이 많은 누비아계 소왕국들과 도시들로 잘게 쪼개져 분열됩니다. 누비아의 파라오들은 한시적으로 평화기를 누리며 이집트를 통치하지만 강대국 아시리아의 침공으로 파라오 타하르카가 쫓겨나고 대신 아시리아의 봉신 왕조인 제26왕조가 들어서며 본격적인 외세 간섭기인 이집트 말기 왕조의 시대가 당도합니다.

제26왕조는 태생부터 아시리아의 신하였기에 정당성이 부족했기 때문에 이집트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나게 되고, 아시리아 전성기 이후 급속도로 쇠퇴하며 최악의 강대국들과 연이어 싸워야만 했습니다. 결국 페르시아의 캄비세스 2세가 이집트를 침략하여 페르시아의 제1차 점령기를 시작했다. 이 페르시아의 통치기를 제27왕조라 부르며, 제27왕조의 파라오직은 곧 페르시아의 황제들이 겸임했습니다.

다리우스 1세 등 페르시아 군주들은 이집트의 종교를 존중하며 나름 관대한 지배를 했지만 그리스와의 페르시아 전쟁에서 막대한 전비를 투입하며 재원이 부족하자 페르시아는 부유한 이집트의 세금을 털었고, 이에 크게 반발한 이집트는 페르시아가 왕위 계승 문제로 혼란스러운 틈을 타 제28왕조를 세워 독립했습니다.

이후 이집트에서는 페르시아를 지독하게 경계했으나, 결국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가 35만 명에 이르는 대군을 몰고 침략하며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페르시아의 정복 11년만인 다리우스 3세 시대에 페르시아가 무너지게 되면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이집트를 정복하여 페르시아의 식민 지배는 끝이 납니다.

페르시아를 멸망시키고 오리엔트의 패자로 등극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젊은 나이로 사망하자 그의 신하들이 제국을 나누어 가졌는데, 그중 이집트 지방은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차지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기원전 305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건국했고, 이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약 300년 정도 이집트를 통치했는데요. 특히 프톨레마이오스 3세 시대에는 셀레우코스 왕조를 바빌론까지 밀어붙이는 기염을 토하며 지중해 세계의 최강자로 군림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프톨레마이오스 4세 시절부터 점차 국력이 약해지며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신흥 강대국 로마의 힘을 빌려 목숨은 보전했으나 날로 상황은 악화되었고, 결국 최후의 파라오 클레오파트라가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가 이끌던 로마 해군에 대패하며 멸망합니다. 이후 이집트는 총독이 없이 로마 황제가 직접 통치하는 로마 제국의 이집트 속주가 되었으며, 이로써 몇천년에 걸친 고대 이집트의 역사도 끝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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