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 제국, 혹은 타완틴수유(Tawantinsuyu)는 콜럼버스 이전 시대의 1438년부터 1533년까지 약 95년간 남아메리카 지방을 다스린, 아메리카에서 가장 거대한 제국입니다. 제국의 군주 칭호는 사파 잉카라 했으며, 이 군주 칭호를 따서 서양에서는 '잉카 제국'이라 일컬었습니다.
잉카 제국의 행정, 정치, 군사의 중심은 지금의 페루인 쿠스코였으며, 잉카는 무력 정복과 평화 조약을 적절히 사용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현재의 에콰도르 서부, 페루, 볼리비아 남서부, 아르헨티나 북서부, 칠레, 콜롬비아 남서부 등 안데스산맥을 중심으로 넓게 퍼진 광대한 남서 아메리카 대륙 영토를 통치해 전성기를 이루었습니다.
우리가 잉카인이라고 부르는 잉카족은 12세기경 현재 쿠스코 지방에 거주하던 부족이었는데요. 잉카 제국의 시조라고 불리는 망코 카팍의 시대에 잉카 제국의 전신인 쿠스코 왕국이 세워졌으며, 쿠스코를 중심으로 연안 쪽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잉카인들은 태양신을 섬겼고, 11개의 왕족 계층에 속하는 관리자들로 구성된 관료 조직이 있었으며 라마나 알파카 등 고산지대에 자생하는 동물들이 잉카 제국의 자원이었습니다.
이후 쿠스코 왕국의 9번째 지도자이자 잉카제국의 정복 군주, 초대 황제인 파차쿠티 재위기에 인근의 창카족을 정벌하고 페루 지역 대부분을 빠르게 먹어 치웠습니다. 쿠스코 계곡 인근만을 지배하던 지방 세력인 쿠스코 왕국은 파차쿠티의 시기에 본격적인 제국으로 탈바꿈합니다.
파차쿠티는 '대지를 흔드는 자'라는 뜻으로, 그 위명에 걸맞은 업적을 남긴 지배자였는데요. 어릴 때부터 이미 뛰어난 용맹과 학식을 보이며 귀족들의 지지를 얻어냄과 동시에 결정적으로 도망간 부왕을 대신해 수도 쿠스코를 창카족으로부터 지켜내면서 쿠스코의 왕이 됩니다. 파차쿠티는 즉위 직후부터 활발한 정복 활동을 통해 인근의 부족들은 모두 파차쿠티를 '태양의 아들'로 인정하면서 잉카에게 복속했습니다.
파차쿠티는 정복 활동 이외에도 쿠스코의 시가지를 전면적으로 재정비하고 제국의 수도에 걸맞은 대도시로 재건했는데요. 시민들이 출신 지역에 따라서 해당 구역에 모여 살도록 만들었고, 하난(상위 계급)과 후린(하위 계급)으로 계급을 확실하게 나누면서 사회의 안정을 꾀했습니다. 덕분에 쿠스코 왕국은 안정적으로 타 부족들을 흡수해 대제국으로 성장해나갈 수 있었고, 그 때문에 잉카의 제국으로서의 역사는 파차쿠티의 즉위 원년인 1438년부터 시작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또한 가장 유명한 잉카 유적으로 알려진 마추픽추 역시 파차쿠티의 시대에 건설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파차쿠티가 1471년에 사망하자, 그의 아들인 투팍 잉카 유판키가 황위에 올랐습니다. 아버지를 본받아 잉카 제국의 영토를 현대의 에콰도르 지방까지 넓혔으며, 키토에 대한 특별한 애착을 보이면서 쿠스코에서 직접 건축가를 데려와 제대로 된 도시로 재건설하기도 했습니다. 투팍 잉카는 페루 지방에서 유일하게 잉카에 저항할 만한 세력을 가지고 있던 치모르 왕국을 정복하고 손자인 우아이나 카팍이 칠레 지방과 아르헨티나 서부, 에콰도르와 콜롬비아 남부 지방까지 진출하면서 잉카 제국의 영토를 최대로 넓혔습니다.
강대했던 잉카 제국도 우아이나 카팍 황제가 천연두로 사망한 이후 형제들끼리 내전이 벌어지며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우아이나 카팍 황제가 사망하기 직전, 그의 장자인 니난 쿠요치를 후계자로 지목했지만 니난 쿠요치 역시 아버지와 똑같이 병에 걸려 사망하게 됩니다. 그렇게 황제의 자리가 공석이 되고, 황제의 두 아들인 우아스카르와 아타우알파 사이에서 제위 계승 전쟁이 일어났게 되고 제국은 두 쪽으로 갈라져 분열되었습니다.
그 상태에서 결정적으로 스페인의 콩키스타도르들이 유럽에서 아메리카로 건너왔고, 스페인군이 옮겨온 전염균들에 면역이 없었던 잉카인들이 떼로 죽어 나가면서 안 그래도 약해진 잉카 제국은 더더욱 세력이 줄어들게 됩니다.
우아스카르를 내전에서 꺾고 황제에 오른 아타우알파는 잉카를 정복할 기회만을 노리던 스페인의 침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계략에 휘말려 포로로 잡히고, 스페인 군인들은 지도자를 잃어버린 잉카 주둔지를 습격해 엄청난 양의 보물들을 약탈해갑니다. 이를 보고 아타우알파는 자신의 몸값으로 방 하나를 2번 채울 정도로 많은 양의 황금을 바쳤으나 결국 풀려나지 못하고 사망하게 됩니다.
아타우알파 황제가 교수형 당해 죽은 이후, 피사로는 후임으로 망코 잉카 유판키를 새로운 꼭두각시 황제로 추대했고 허수아비 제국을 부여잡은 채로 남미의 재물을 약탈하고 본격적인 식민지 작업에 열을 올렸습니다. 망코 잉카 유판키는 처음에는 스페인인들에게 협력하는척하다가 우아이나 카팍의 황금 조각상을 찾아오겠다는 핑계로 쿠스코에서 빌카밤바로 도망가 신잉카국을 세우고 스페인에 대한 저항운동을 벌였습니다.
망코 잉카 유판키는 스페인에 협력하는 부족들을 연이어 습격하고 스페인 탈영병들을 받아들여 기병과 화기병을 양성했지만, 자신이 받아들였던 스페인인들에게 암살되고 맙니다. 이후 황위에 오른 신잉카국 최후의 군주 투팍 아마루는 빌카밤바로 몰려오는 스페인 군인들에게 끝까지 맞서 싸웠으며, 패색이 짙어지자 빌카밤바를 스스로 불태우고 밀림으로 도주했으나, 이들 모두 결국 스페인에 잡혔고 결국 투팍 아마루 역시 포로가 되어 끌려가 처형당하게 됩니다.
그렇게 최후의 사파 잉카인 투팍 아마루가 사망하고 잉카 제국은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죠. 이후 남아메리카 지방은 스페인 제국의 혹독한 통치 아래에서 신음하게 됩니다.
'얕고넓은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조선의 건국 신화, 단군신화 (0) | 2022.07.15 |
---|---|
2023 예술의 전당 교향악축제 창작곡 작품 공모 (0) | 2022.07.14 |
스페인 미술가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들 (0) | 2022.07.12 |
마야 문명의 역사 (0) | 2022.07.12 |
2022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접수 및 일정 정보 (0) | 2022.07.1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