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얕고넓은 이야기

유럽의 중세 시대의 시작, 중세 전기

by 유한시 2022. 7. 25.

 

중세는 유럽 역사에서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이 있었던 5세기부터 르네상스(14세기~16세기)와 더불어 근세(1500년~1800년)가 시작되기까지의 5세기부터 15~16세기까지의 시기를 말합니다. '중세'라는 용어는 르네상스 시기 유럽에서 자신들과 고대 사이의 역사를 암흑기로 인식하는 입장에서 쓰이기 시작했기 때문에 동양사에는 적용이 어렵습니다. 서양의 중세 시대는 중세 전기, 중세 중기, 중세 말기로 구분하기도 하는데요. 오늘은 중세 시대의 시작인 중세 전기에 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중세 전기는 유럽사의 중세 기간 중 476년부터 1000년까지를 일컫는 용어입니다. 중세 전기의 시작은 476년, 서로마 제국의 멸망부터 시작되며 1001년 이후는 중세 중기로 보고 있습니다. 중세 전기는 게르만족의 민족 대이동이 시작된 시기로 서로마 제국은 멸망했지만 동로마 제국은 이를 지속하고 로마 제국의 정통성을 지켜냅니다. 서유럽의 경우 이베리아반도에는 이슬람 문명이 정복해 들어왔고, 이를 막기 위해 카롤루스 대제의 기독교 세계 수호와 신성 로마 제국의 건국이 이뤄졌습니다. 이 시기에는 삼포식 농업이 시행되었고 유럽의 봉건제가 확립되던 시기로 볼 수 있습니다.

중세 전기에 주요한 사건으로는 이슬람의 대두, 동로마 제국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의 원정, 카롤루스 대제의 프랑크 왕국과 베르됭 조약으로 서, 중, 동으로 분열, 바이킹 침략 등이 있습니다. 이 시기는 잦은 전란으로 온갖 것이 파괴되는 일이 빈발하던 시절이라, 흔히 암흑시대로 알려진 중세의 이미지는 이때에 가깝습니다. 또 기독교와 켈트 신화, 북구 신화가 혼재되어 있던 시대로, 널리 알려진 아서 왕과 성배 전설, 디트리히 폰 베른, 베어울프, 시구르드와 성 조지 등 신화적인 중세 서사시는 모두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중세 중기만 되어도 현실적인 정치나 사회상에 밀려 신화적인 이야기는 잘 등장하지 않습니다.

 

 

10세기에 들어서 각지로 이동한 게르만족은 앵글로색슨족이나 서고트족 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프랑크 왕국이나 동로마 제국의 통치 아래로 흡수됩니다. 프랑크 왕국에서는 카를 마르텔이 사라센 제국을 물리치고 궁재의 힘이 강대해졌으나, 8세기에는 피핀에 의해 카롤링거 왕조가 확립됩니다. 이 무렵 프랑크 왕국은 로마 교황과의 유대를 강화하기 시작했는데요. 교황 또한 그리스 교회와 대항하기 위해 세속 군주와의 유대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프랑크 왕국에서는 봉건제의 기반이 성립되기 시작함과 동시에 중세 교황과 군주와의 협력과 상호 간의 정치적 이용이 전개되기 시작합니다. 동로마 제국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시대의 번성하고 영화로움을 이어 나갔으나 6세기 말부터 슬라브족의 발칸 이주와 국내의 반란으로 인해 동시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러나 7세기 초부터 둔전병과 군관구 제도 등을 채용하고 중앙 집권을 강화해 7세기 말 사라센군의 침략을 막아서 지키게 됩니다. 또한 8세기 초에는 우상숭배 문제를 결정적인 원인으로 로마 교회와 대립하기 시작하고, 제국은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그리스 국가로서의 특색을 강하게 가지게 됩니다.

7세기에는 이슬람교가 확립되자 종래의 여러 문명을 계승하면서도 이들의 문명권과는 다른, 독자적인 이슬람 문명을 만들어냅니다. 이슬람의 교조인 무함마드는 알라의 계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알라의 절대적 귀의를 가르치게 됩니다. 그는 한때 메카에서 메디나로 피신해 아라비아 전 부족을 통일하고 이슬람 세계 건설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무함마드의 사후, 역대 칼리프는 이슬람 세계의 확립과 발전에 노력하게 되는데요. 불과 한 세기 동안 동으로는 중앙아시아·인도, 서로는 북아프리카·이베리아반도에 걸치는 대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이것이 사라센 제국입니다. 정복 사업은 그 후에도 계속되었으나 제3대 칼리프 시대 무렵부터 교단 내부의 대립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됩니다.

1000년, 카롤루스 대제가 교황 레오 3세로부터 로마 제국 황제의 제관을 받아 서로마 황제로 즉위하게 되면서 그 막이 열립니다. 카롤루스 대제는 교황에 의한 동로마 제국 황제의 간섭을 배척하고 로마 제국 이래의 통일 제국을 건설하였는데요. 카롤루스 대제는 카롤링거 르네상스를 일으켜 민족 이동기의 쇠퇴했던 문화를 부흥시키고 게르만, 로마, 그리스도교 등 여러 요소를 융합시켜 오늘날까지도 내려오는 서유럽 공통의 출발점을 이룩하게 됩니다. 이것이 비잔틴 세계나 이슬람 세계와 구별되는 이른바 중세 유럽 세계라는 정치, 문화적 공동체로 볼 수 있죠. 그러나 고대 이래로 교역 활동의 중심 무대가 되어 온 지중해가 사라센의 수중으로 들어가게 되고, 대제의 사후에는 왕국도 분열되어 동프랑크(독일), 서프랑크(프랑스), 이탈리아 등 3국이 성립됩니다. 한편 영국에서도 색슨계의 통일 왕조가 성립되는 시기였습니다.

이 무렵의 유럽에서는 점차 장원제가 보급됨과 더불어 지배자와의 주종 관계 사이가 일반화되기 시작하면서 봉건제가 성립됩니다. 그리고 장원의 지역적 집중이 이루어짐으로써 나중에 영주권이 강화되어 왕권과 대립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지방분권화 경향을 나타나게 됩니다. 한편, 교회도 이른바 교회령을 가지게 되면서 이 무렵에는 그 권력이 세속의 영주와 다를 바 없어지게 되는데요. 이로써 중세의 소위 2원적 지배체제가 확립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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